최신글

 
2018-04-04 톰과 제리의 여행
직장에 사표를 냈다. 아주 쿨 하게 미련 같은 것은 남겨 두지 않기로 했다. 근 6년간 충실했던 직장을 그만두기까지는 갈등의 연속이었지만 실력을 쌓고자 노력했던 내 분야 쪽의 일은 이만큼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눈물을 뿌려가며 배운 그간의 생생한 의료 체험을 글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일부러 사서 한 고생일지 모르나 나름대로 성취와 보람이 강렬한 직업을 고른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고 판단된다.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해 몰두한 시간들은 참으로 행복하기만 하다. 이번 주를 마지막으로 회사에 작별을 하면 나는 다음 날 곧바로 여행길에 오른다. 단 하루도 지체할 수 없는 것은 심지 약한 내가 혹시 변덕을 부려 그대로 주저앉게 될까 봐 빡빡하게 스케줄을 짜 두었다. 장장 40여 일을 계획한 나 홀로의 여행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흥미로운지 가슴이 두근거린다. 잔뜩 부푼 마음으로 여행가방을 챙기고 있는데 곁에서 지켜보던 딸 아이가 일침을 놓는다. "엄마 혼자 가는 여행은 절대 허락 못해. 어디든지 꼭 나랑 함께 가야돼, 알죠?" "무슨 그런 억지가 있냐, 이번엔 기필코 나 혼자 가고야 말겠어." 그러나 딸과의 신경전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음을 나는 예감한다. 어쩌자고 딸 아이는 청년의 시기인 지금까지도 껌 딱지처럼 찰싹 내 옆에 붙어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제 또래 친구들은 기회만 되면 어떻게든 부모의 집을 떠나려고 한다는데 내 딸 아이는 유독 집 밖으로 나가 독립하는 것을 절대 반대 또 반대하고 있다. 아이의 말로는 궁궐이든 초가든, 스테이크를 썰든 보리죽을 먹든지 간에 오직 엄마가 있는 공간은 행복이라고 달콤한 이유를 쏟아 놓는다. 하지만 나도 가끔은 엄마의 자리를 내려 놓고 홀가분해지고 싶을 때가 많다. 늘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딸 애의 관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거다. 공교롭게도 우린 혈액형도 같고 식성과 분위기, 좋아하는 스타일도 꼭 닮았다. 게다가 정의로운 일엔 몸 사리지 않고 불 같은 성깔을 드러내는 것 조차 같다. 이런 딸과 줄곧 한 지붕 밑에서 살고 있으니 충돌이 잦은 수 밖에. 그런데 금 쪽 같은 이번 여행에도 딸 아이는 나를 참견하고자 발 벗고 나섰다. 도대체 누가 엄마이고 누가 자식인지 모를 일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사건 하나를 털어 놓겠다. 꽤 오래 전에 우린 라스베가스로 여행을 갔었다. 엄마와 딸의 그림이 그렇듯 우린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는 하하 호호 거리며 아주 행복한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딸과 나는 대판 싸우고 말았다. 예약해 둔 멋진 워터 쇼를 재미있게 구경하고 난 뒤 나는 호텔 내부의 아름다움에 취해 딸을 놓쳐버렸고 또 딸은 잃어버린 엄마를 찾아 밤새 헤 메고 다녀야 했던 것이다. 사건 이후 집에 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잠도 따로 자고 밥도 따로 먹고 구경도 각자 하면서 입술을 악물며 남아있는 3박 4일을 참담하게 보냈다. 평소 오늘의 해가 지나도록 분을 품지 말아야 한다고 일러주던 나의 가르침은 스스로 밴댕이 소갈딱지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게 된 셈이다. 일생 부끄럽기 짝이 없는 슬픈 기억이 되고 말았다. 지나친 관심이 간섭으로 느껴져 버거워하는 나와 늘 우물 곁에 놓아 둔 아이처럼 불안해 보이는 엄마를 보호하려는 딸과의 팽팽한 줄 다리기는 어쩌면 영원히 지속될 것 같다. 그렇다면 번번히 참패를 당해 땅을 치는 한이 있더라고 똑 소리 나는 딸과의 여행을 시작해볼까 한다. 그러나 길을 떠나기 전 여행가방을 꾸리면서도 우린 에니메이션의 톰과 제리처럼 서로 아웅 다웅 하고 있다. 에스더 최 (수필가) KTVN TV Reporter 역임 SF Koreadaily News Reporter 역임
2018-04-04 행복
무심코 책 한 권을 꺼냈는데 그 안에서 신문지 한 조각이 후두둑 떨어진다. 뭘까 하는 마음에 새삼 접힌 주름을 펴고서 천천히 읽어본다. "베풀면 행복해진다"는 칼럼이다. 사랑하는 분이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의 행복을 혹시라도 덜 감사하면서 살아갈까 하는 염려의 마음으로, 일부러 만나는 날짜를 기다리며 건네주신 것이다. 몇 달이 지나갔지만 잊고 있었던 감동이 다시 가슴을 흔든다. 신문 속 칼럼의 연구 결과는, 가벼운 물질의 작은 베풂도 뇌를 자극하여 그 순간부터 움직임이 매우 활발해진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남을 위해 베풀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은 다르며 - 걱정, 근심, 우울감 대신 환한 행복감으로 차 있으며 - 베푸는 사람들은 결국 주변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단다.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마음은, 결국 나에게로 되돌아오는 행복이라는 것이다. 베푼다는 것은 지독한 중독이며 그 이유는 스스로가 행복해지기 때문이리라. 오늘도 아니 남아있는 나날들도 사실은 모두가 행복해지려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늘 조금이라도 더 가지고 싶은 욕심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베푸는 마음보다 가진 것을 지키려는 마음이 훨씬 더 크다.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만족해하면, 곁도 보여지고 뒤도 돌아봐 지면서, 바로 그것이 행복을 가지는 가장 쉬운 지름길일 것인데도,,, 어떤 날은 유독 어깨 내리고 힘들어하면서 나보다 더 가진, 남의 행복만을 바라보며 부러워하곤 한다. 그렇게 오랜 반복의 날들을 습관처럼 살아가고 있지만 늦지 않게, 가슴이 떨리며 살아있다는 행복을 다시 느끼고 싶다. 베풀면서 행복해지련다. 비록 많이 모자라더라도, 작은 물질도 베풀고 따뜻하고 진실한 마음도 보여주고 사랑의 말 한마디도 전하면서 다른 주위의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나도 같이 더 많이 행복해지자꾸나.
2018-03-07 위대한 인간 승리 – “사도 바울의 일생” 김종수
두껍고도 긴 "사도 바울의 일생"을 1년의 시간으로 책을 덮었다. 성경 속에 있었던 사도 바울이 어느 틈인가 나에게로 걸어 들어왔다. 크게 꾸짖지도 않았고 나무라지도 않았지만, 부끄러움에 눈시울을 적셨다. 태어나 요람에 쌓여서 아니 엄마의 탯줄에서부터 시작되어진 나의 신앙은, 습관처럼 아니면 어떤 죄의식의 부담으로 늘 나의 일상에 간신히 매달려서 오랫동안 함께 살아왔다. 굳이 고해하듯 하는, 억지의 죄를 생각해내고 용서를 구하는 의식이 아니라, 나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있는 스스로의 수치와 부끄러움에 흘린 작은 속죄일 것이다. 어쩌면 너무 깊은 신앙으로 인해서, 세상살이의 간편한 죄들이 오히려 더 커다란 구속으로 묶여질까의 두려움과, 모르고 짓는 죄에 대한 나름의 적당한 면죄부를 주고 싶었던 것일 거다. 아는 만큼 살아간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알아야겠다. 과연 무엇이 어떤 마음이, 이렇게도 긴 한 역사 속의 인물을 알리기 위해 수없이 많은 정보와 고증과 그리고 작가로서의 문체까지 더하며, 이토록 긴 책을 집필하게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을 참을 수없다. 깊은 신앙인으로서의 작가의 모습은, 개인적인 몇 번의 만남으로 처음 만나는 순간에 느꼈지만, 이 책을 다 읽고난 후 더없는 새로운 존경심과 인내와 열정에 고개 숙인다. 짧은 문장 하나도 제대로 끝을 맺지못하고 서성이던 많은 시간들을 기억하는 나 자신을 알기 때문이다. 나도 어쩌면 내 인생의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을 찾았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렇다고 믿고 싶다. 커다란 어떤 계시와 불같은 성령으로 변화되어지는 모습은 아닐지라도, 어느 날 내게도 변화 아니 인생의 거센 설레임과 뜨거움과 욕심을 만났다. 누군가가 알아주는 그런 변화가 아니라 진정한 삶의 마지막으로 걸어가야 하는 길을 찾은 것이다. 그것을 감히- 예술을 만났다고 하고싶다. 어떤 모습으로 남겨질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해야하는 지는 알았다. 아는 만큼 살아간다고 아니 그렇게 살아진다고 믿기에 더욱더 많이 알려고 노력한다.
2018-03-07 쉼표가 머문 자리
그까짓 것 쯤이라고 생각했다. 평소 필수 영양제를 한 움큼씩 챙겨 먹는 또래 친구들을 보며 나는 은근슬쩍 혀를 찼다. 기본적인 비타민 C 조차 달 포에 한번 정도 먹을까 말까 하면서도 잔병치레 없이 튼튼하다고 자랑질을 하다가 큰 코를 다친 셈이다. 착한 일 한답시고 이웃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에게 병문안을 다녀 온 뒤 감기 바이러스를 끌고 온 것이 화근의 시초였다. 이 후 염려했던 대로 할머니로부터 전달된 바이러스는 내 안에 침투하여 독살스럽게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목이 따끔거리더니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해졌고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흠씬 두들겨 맞은 것처럼 쑤셨다. 하지만 나는 그 따위에게 절대 질 수 없다는 집념아래 맨투맨 전투전에 들어갔다. 우선 콩나물국에 매운 청양고추 팍팍 넣어서 몇 사발 들이키고 진한 쌍화탕으로 몸살기를 달랜 뒤 종합감기약을 꿀꺽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솜이불을 뒤집어 쓰고 억지로 땀 밖으로 녀석을 뽑아내고자 사투를 벌였다. 그러나 이번엔 만만치가 않았다. 결국 일주일을 못 버티고 병원에 실려갔다. 담당 의사는 유행성 독감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열이 오르면 또 다시 응급실로 달려 와야 한다며 문밖 출입을 삼가 하고 집에서 격리요양을 할 것을 당부했다. 그까짓 것으로 뭐 그리 유난을 떠나 싶더니 웬걸 몇 날이 못되어 나는 아예 침대에서 내려 올 수 없는 중환자가 되고 말았다. 덜컥 겁이 났다. 잊고 지냈던 인생에 깊은 후회가 밀려왔다. 오직 성공하기 위해 뛰고 달려온 길 뒷편엔 성숙한 모습은 찾아 볼 수도 없었고 행복해지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자리에 거룩한 그림자는 애당초 삭제돼 있었다. 살아오는 동안 밝았던 주파수보다 낙담과 번민에 사이클을 맞춰 고독과 적막으로 낭비해버린 시간들이 엄청 슬펐다. 또 다시 한 주가 흘렀다. 이젠 뭔가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인생은 딱 두 갈래뿐임을 생각했다. 믿고 가느냐 안 믿고 가느냐에 달려 있기에 속히 심각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마침내 "에스더는 이미 회복되어 건강해졌노라" 고 외치며 나는 내 영혼에게 멋진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급격히 하강하고 있던 병세는 신기하게도 돌연 상승곡선을 탔다. 폭풍 속에서 추락하던 비행기가 그 모진 바람을 가르고 다시 하늘로 역 비상하듯 지쳐 있던 나의 세포들이 명령에 따라 활기차게 제 역할을 시작한 것이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아르투르슈나벨은 "내가 치는 음표는 다른 피아니스트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음표 사이의 정지, 바로 그곳에 예술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삶의 쉼표가 머문 자리 그 곳에 예술이 존재한다면 호되게 앓고 일어난 나의 변신은 참말로 예술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바이러스와의 전투에서 나는 두 가지를 선물로 받았다. 첫 번째는 내 안에 장전돼 있었던 걱정과 미움과 상처의 핀들을 안전하게 뽑아낸 일이다. 마치 클리어한 대나무 속처럼 말이다. 또 하나는 부잣집 마나님의 넉넉했던 나의 풍채가 쭉쭉 빵빵 'S'자의 섹시한 몸매로 탈바꿈한 일이다. 믿거나 말거나 내가 나한테 홀딱 반했을 정도다. 고치 속의 애벌레가 껍질을 벗어내고 호랑나비가 되듯 욕심의 옷을 훌훌 벗어 던진 나는 이 아름다운 봄날 나비가 되어 푸른 창공을 가볍게 날아오른다. 그리고 못된 감기부대를 송두리째 꽁꽁 묶어서 하늘까지 끌고 올라가신 사랑하는 내 이웃친구, 스웨덴 할머님의 명복을 빈다.
2018-02-07 사랑
새로운 사랑에 빠졌다. 그래서 다시 사랑이라는 뜻이 알고 싶어졌다. 오랜만에 찾아본 사전에서의 뜻은,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며 또 보고 싶어하는 열렬한 마음이라고 한다. 나는 지금 강아지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마음 그대로- 자꾸만 보고 싶고, 곁에 없음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고, 하루라도 못 보는 날은 비릿한 살 내음도 어느덧 그리워진다. 차가운 겨울 해가 너웃하며 넘어간다. 낡은 지붕과 마당에 한가득 쌓여있는 낙엽과 세월에 취한 듯 불그스레한 석양을 바라보고 있는 내 곁에, 털북숭이 강아지도 제법 심각한 얼굴로 하늘을 보고 있다. 아침에 데려다 놓고 저녁이면 데려가는 아들의 강아지이다. 온종일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심지어 화장실까지 따라다니며 오직 나 하나만 세상에 있는 듯, 입 맞추고 눈 맞추면서 온갖 사랑의 표현을 해준다. 강아지에게는 곁에 있는 내가, 그때의 그 순간만큼은 온 세상이며 우주인 것이다. 문득 이 강아지를 바라보며 사랑을 되돌아본다. 누구에게나 어느 하나 그 무엇이든, 절대적이며 무조건 저절로 내가 낮추어지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욕심내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내가 요구하는 구속을 하지 않으며 언제나 베푸는 마음과 넓은 자유를 주는 것들. 그것이 진정 사랑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나만 바라보며 나만 사랑하는 그 강아지는, 저녁 끝 무렵에 돌아온 아들의 "집에 가자"는 한마디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단숨에 따라나서며 사라져 간다. 그렇게 그 사랑도 매일 밤 끝난다…..
2018-02-07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바쁘다. 정말 되게 바쁘게 산다. 웬일인지 나이 들면서는 일 욕심이 더 많아졌다. 자진해서 오버타임까지 찾아내는 나를 향해 미국인 직장 동료들은 한국사람은 부지런하다 못해 강한 민족이라는 말을 한다. 질투인지 아님 부러움인지 잘 모르겠지만 툭하면 결근하는 그들과는 달리 어쩌다가 몸이 아프더라도 끝내 주어진 책임을 완수 하려는 나의 근면함에 회사측은 열렬한 박수를 보내준다. 누군가가 내게 물었다. "소띠 도 아닌데 왜 그토록 일에만 몰두하며 사느냐"고. 나는 지체 없이 대답한다. "그저 일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요" 라고. 아니 솔직히 재미를 넘어서서 일할 수 있는 내가 나 자신한테 참으로 고맙다. 나 스스로 기특함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이 낯 설은 이민의 땅에서 당당하고 씩씩하게 매끄럽지도 못한 영어 실력으로 달러를 벌어 잘 사는 것이 대견하기만 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예쁘다. 그런데 오늘은 내가 회사를 땡땡이 쳤다. 이유는 단지 비가 와서다. 이런 날엔 나는 꼭 그 찻집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창문 넓은 찻집에 앉아 유리창에 뿌려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는 것은 여간 한 행복이 아니다.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있는 작은 물방울들이 또르르 풀잎의 알집 속으로 굴러 떨어 지는 것도 마냥 신기하고 굵은 비와 가는 비의 강약의 조화로움은 그야말로 환상이다. 그리고 마침내 투명한 유리 안으로 초대된 빗방울과 커피 향의 하모니는 절정에 다달음을 느낀다. 와 우, 바로 이 맛이다. 이런 매력과 마력에 빠져 나는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무한한 행복에 젖는다. 애타게 기다릴 님과 임이 없어서 좋고 온 종일 카페인만 마셔도 속이 쓰리지 않아서 즐겁다. 오늘까지 원고 마감이라는 월간지측의 독촉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마음 편함이 다행이고 핸드폰 배터리가 떨어진 것까지 안심이다. 문득 어느 책에서 읽었던 인디언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 가끔씩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본다고 한다. '나의 영혼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뒤를 지켜보는 것' 이라고 한다. 우리도 인디언처럼 내 안에 있는 내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또 내가 달리는 속도는 적절한 것인지 한번쯤 뒤돌아보면 좋겠다는 메시지였다. 내 안에 내가 충분히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한 오늘, 나는 아주 잘 놀았다고 자신을 위로한다. 그러나 남은 숙제 하나는 오늘 밤 안으로 약속한 원고를 제출하는 일이다. 부담이 되지만 돈도 안 되는 글쓰기를 계속하는 이유는 내 안에 있는 다른 나와 공감하고 싶어서다. 공감한 그 소통으로 많은 사람을 얻어 친하게 잘 지냈으면 싶기에 늦은 시간 나는 컴퓨터를 연다. 그리고 오늘의 일기노트에는 '커피랑 완전 행복했음' 이라고 적는다.
2018-01-05 ENTER
유독 신앙심이 투철한 친구가 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신년초가 되면 어김없이 신(神)을 바꾼다. 매번 상당한 금액을 지불하면서까지 용하디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 다닌다. 하지만 단 한번도 속 시원한 답변을 들어보지 못하고 오히려 혹부리 영감처럼 커다란 근심 덩어리를 매달고 돌아오곤 한다. 그리고는 가정에 악운이 끼었다는 점술인의 말을 곱씹으며 새로운 한 해를 힘겹게 걸어간다. 그런 그녀의 고운 얼굴은 일년 내내 벌레를 씹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을 벗어나지 못한다. 나도 한때는 인생이 영화처럼 예고편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재빨리 마음을 바꾸었다. 막상 그렇게 된다면 예정된 인생에 꼼짝없이 질질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녀가 훌륭한 남편과 똑똑한 아이들, 넉넉한 재정과 멋진 미모까지 갖췄지만 왜 그토록 미친 듯이 점을 치러 다니는지 잠시 생각해 봤다. 단정하건대 마음이 온통 허해서 그렇다. 심리 상태가 뒤죽박죽인 그녀의 내면엔 왜 사는지에 대한 분명한 의식이 없기에 상황에 따라 자기가 믿었던 믿음까지도 홀드하고 본인의 입맛에 따라 다른 신을 골라 이용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듯 내면이 정돈 되지 않은 사람들을 끌어 당기고 있는 무당과 역술 인이2016년 언론 자료에 의하면10년 만에 2배로 증가, 무려 100만 시대에 돌입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2012년부터 대한 경신 연합회는 ' 무속심리상담사 자격시험'을 시행했다고 하니 나의 개인적인 견해로는 안타깝기 그지 없다. 귀신을 섬겨서 길흉을 점치고 그 결과에 따라 예언과 질병을 치유하는 것으로 굿판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 요즘 세태로 젊은 취업준비생, 주부, 정치인, 공무원이 다수란다. 2018년 새해가 밝았다. 매 해 그랬던 것처럼 '대박 터지는 꿈'은 이제는 접었으면 좋겠다. 이미 받은 복을 헤아려 복을 나눠 주기에 동분서주 했으면 한다. 만사형통도 그리고 어떤 요행도 기대하지 말고 그저 정직하고 밝은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감사하며 살아보기로 하자. 뛰고 달리는 우리 앞길에 예기치 않은 빨간 신호등이 켜졌을 때는 지혜로움과 인내로 다음 신호등을 기다리고 초록 불이 들어왔을 때는 전투자세를 갖추고 용수철처럼 앞으로 돌진하자. 그리고 노란 신호등 앞에 섰을 때는 급한 마음을 접고 겸허하게 자기를 성찰해 보는 시간을 갖자. 그리고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착각하고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어찌 귀하고 귀한 자신의 인생항로를 고작 잡신이 일러주는 사주풀이와 점으로서 결정 하는가 말이다. 바라건대 당장의 해 갈음에 속아 가짜 모조품의 기쁨에 사기 당하지 않길 바란다. 담배 맛을 아는 사람은 결코 니코틴을 끊을 수 없는 것처럼 아예 처음부터 그 일은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아야 한다. 컴퓨터에는 ENTER 키가 있다. 2018년을 맞이하여 쓸데 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를 결단했다면 지금 당장 마음의 ENTER 키를 힘차게 누르자. 엔터를 치는 순간 당신이 선물로 받은 새로운 365일은 상황에 상관없이 화이팅 이며 내면 세계는 잘 정돈된 행복과 기쁨이 넘쳐 날 것이다.
2018-01-05 새해 감상 (感想)
새로운 해가 또 왔다. 스스로 말해준다, 점점 더 나아지고 행복해지고 있다고. 눈가의 주름은 깊어져 가고 가끔 해야 하는 일들을 깜박깜박 잊어버려 가며 나이를 하나씩 쌓아가지만, 더 아름답게 변해가고 있다고 믿으련다. 청춘의 반질거리며 눈부시고 아름다운 어쩌면 손끝만 닿아도 쨍하며 소리가 날 것 같은 팽팽한 모습보다, 지금의 편안한 주름과 빈틈이 보여지는 모습이 훨씬 더 이쁘다고, 역시 믿으련다. 삶이라는 걸 커다란 원으로 그려보며, 새로운 해를 맞아들이면 조금씩 그 가운데로 - 자신에게로 다가가고 있다고 상상한다. 끝의 넓은 곳에서 차츰차츰 안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수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고 그렇게 인연을 맺고 살다, 어느덧 가운데의 점 하나로 다가가고 있다는 그런 느낌이다. 오랜 세월 안에서 많은 이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은 기쁨과 상처와 사랑과 후회로 남아있지만, 여전히 뜨거운 열정에 가슴을 열면서 더없이 자신에게 열중하는 이를 만나면, 어느새 전염되어 다시금 뭔가를 꼭 해야 할 것 같아 새롭게 마음이 설레인다. "있잖아, 불행하다고 한숨짓지 마 / 햇살과 산들바람은 한쪽 편만 들지 않아 / 꿈은 평등하게 꿀 수 있는 거야 / 나도 괴로운 일 많았지만 살아 있어 좋았어 / 너도 약해지지 마" 일본 할머니 시인 시바타 도요가 98세에 여전히 꿈을 꾸어가며 언젠가 다다르는 자신의 끝자락과 멀지 않은 자리에서도, 희망과 사랑을 그렸고 용기를 전해준다. 그렇게 나도 한참의 세월을 걸어가고, 무한한 상상 놀이를 하고 멋진 나를 꿈꾸며, 내게로 가까워진다. 결코 가볍지 않은 적당한 인생의 무게와 스스로가 측정하는 삶의 아름다움과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지혜가 더해지니 훨씬 더 많이 행복해진다, 포기가 아닌 적당한 화해로. 나이와 행복의 감정이 서로 어깨동무해가며 나란히 걸어간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새해의 또 하나의 무게가 들어가면, 우리는 그만큼 더 좋은 걸 하나씩 얹어가는 것이라 믿으련다.
2017-12-06 성장
아직도 자란다. 여전히 조금씩 자라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별거 아닌 거 같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 무사히 지내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조용히 안도한다. 오늘을 건넜으며 또 내일의 다리를 건너갈 거라고. 그러면서 안다, 난 세상에 하나뿐이고 나의 삶도 하나이지만 그 가치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어느 날, 계속되는 출혈에 놀라 갑자기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많은 좋지 않은 상상을 하고 또 죽음을 생각해보며 나를 뒤돌아보는 며칠이 있었다. 살면서 누구에게나 한번쯤은 있을 법한 일인데도, 막상 나에게 닥쳐보니 무섭고 두렵고 또 어느 누구도 대신해서 함께 기다려주지 못하는 철저한 혼자만의 초조함이었다. 무엇을 정리하며 누구를 제일 먼저 찾으며 어떻게 떠나는 것이 가장 최선일지 생각하면서, 더 잘하지 못한 후회와 어쩌면 더 잘할 수 있다는 새로운 욕심도 떠올랐다. 그러면서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주위의 모든 것에 미안했다. 다시 아무런 일 없이 모든 것이 잘 되어준다면 마음껏 사랑하고 또 무엇보다 착하게 살 거라고 약속했다. 일주일 후, 물론 지나친 걱정과 상상으로 웃으며 끝나는 결과였지만, 그 며칠 동안의 삶의 속도는 느렸고 지금은 다시 일상의 보폭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또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며 새롭게 자라는구나 하는 절절한 감사함을 가졌고, 산다는 것은 힘들거나 기쁘거나 그 무엇이 다가오든, 땅에 두발 붙인 체 스스로의 보폭을 맞추면서 가는 것이라 배웠다.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일들은 수없이 많지만 그래도 끝없이 사랑하라고 한다. 그 사랑은 유통기한 아니 유효기간이 필요하지 않으니 그냥 오래오래 사랑하면 된단다. 사랑도 내게 맞으면 백년도 천년도 사랑하면서, 성장하는 것에 끝이 없는 거처럼 그렇게 하루를 또 다른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2017-12-06 소원을 말해 봐
점점 굵어지는 빗방울이 창문을 세차게 후려치더니 곧 바람까지 합세해 큰 나뭇가지들이 힘 없이 툭 부러져나간다. 잿빛 하늘엔 찢겨진 잔해들이 풍선처럼 나부끼어 정신마저 사납다.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이곳 캘리포니아의 우기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물이 부족한 이 지역의 단비를 두 손 들고 환영해야 하련만 나는 그다지 반갑지가 않다. 이처럼 추운 날엔 더욱 그들 생각에 마음이 시리기 때문이다. 잠시라도 줄기차게 쏟아져 내리는 빗줄기를 끊어 놓을 수는 없을까 하는 안타까운 싶은 심정으로 나는 자동차에 오른다. 오늘은 DVC 근처 공사장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평상시 눈 여겨 봐둔 건물의 구석진 곳에서 어렵지 않게 사람을 만났다. 예상대로 비에 흠뻑 젖어 있는 사람은 비 바람의 냉기에 온 몸을 후들후들 떨고 있었다. 준비해간 침낭을 풀어 그를 감싸주고 따뜻한 음료와 빵을 손에 들려 주었다.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몸을 흔들면서도 순식간에 음식을 먹어 치운 그는 다시 손을 내민다. 또 다른 양식꾸러미를 건네준 뒤에야 나는 자리를 뜬다. 등 뒤로 고맙다고 외치는 인사가 민망하고 미안해서 더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듯 그와 멀어진다. 곧 다른 장소에서도 사람을 만났다. 신발이 없는 그녀의 맨발은 빨갛게 부어 있었다. 두툼한 수면 양말을 신기려는데 부풀어난 발등 땜에 양말이 잘 껴지지 않는다. 억지로 양말을 신기고 급한 대로 내 목도리를 풀어 두 발을 감쌌다. 그리고 낡아서 구멍이 난 그녀의 침구 위에 새 이불을 넣어주고는 돌아섰다. 발걸음이 천근 같다. 마음이 영 개운치 않다. 몇 차례 동네 주변을 더 살핀 후에야 나는 집으로 향했다. 빗줄기가 더욱 거세어져 자동차의 윈도우 브러시가 소용이 없을 정도다. 오늘은 왜 그런지 쏟아져 내리는 비처럼 내 가슴에도 그렇게 비가 흐른다. 아마 몇 해 전의 그 일이 자꾸만 떠오르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날도 오늘처럼 비가 왔다. 밤새 내린 비는 일요일 아침까지도 그칠 줄을 몰랐다. 평소 냉장고를 채워놓지 않고 사는 습관으로 가족들에게 먹일 양식이 없음을 발견한 이른 아침 나는 부랴부랴 마켓으로 향했다. 마켓에 도착 후 파킹을 하려는데 자동차 불빛 속으로 잔뜩 웅크리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팔짱을 낀 채 공처럼 뭉쳐 있는 모양새로 보아 밤새 추위와 싸운 듯싶었다. 갑자기 걱정이 되어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Hello, Hello, Are you okay?" 그러나 몇 번을 불러봐도 미동이 없다. 덜컥 겁이 났다. 그때 마켓에서 장을 마치고 돌아가려던 어떤 행인이 내게 다가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말문이 막혀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그 행인은 침착하게 신고를 했고 곧 응급차가 달려왔다. 그리고 움직임이 없는 그 사람을 쓰레기처럼 플라스틱 백에 둘둘 말아서는 어딘가로 실어갔다. 그 날 아침의 충격 이후 나는 마음의 시선을 바꾸게 되었다. 어떻게든 더 찬란해지길 꿈꾸던 나 개인의 안목에서 관심 밖의 이웃을 이해하며 염려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예전 같으면 내 주머니에 돈 채우기에 급급했으나 지금은 의미 있는 일을 위해 지갑을 활짝 여는 일에 쏠쏠한 재미가 있다. 2017년 올 한 해의 마지막 달력 앞에 서서 나는 불과 얼마 전에 발생했던 사건들을 되짚어 본다. 음악공연장에서의 총격사건과 교회에서 예배 중 끔찍한 살인총격,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이 지역의 대형화재, 그리고 '묻지 마 ' 사건을 생각하며 오늘 하루를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적인지를 실감한다. 나는 그저 어제처럼 오늘 하루도 달달 한 도넛 한 개와 커피 한잔으로 아침을 즐기고 출근하여 열심히 일하다가 저녁나절 무사히 집에 돌아와 가족과 함께 얼큰한 김치찌개에 삼겹살을 깻잎에 싸 먹을 수 있는 평안을 바란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의 지진 지대에 살고 있는 내가 언제 어느 때 세상과 작별할지 모르기에 ' HERE AND NOW ' 지금 여기 내 자리에서 넉넉히 퍼주고 충분히 사랑하여 후회 없는 인생의 발자국을 남기고자 한다. 문득 조금 전에 만났던 발에 동상이 걸린 여인네가 마음에 몹시 걸린다. 급히 핸들을 돌려 그 장소로 달려갔다. 아! 그러나 웬일인지 그녀가 기거했던 자리는 말끔히 치워져 있다. 그녀가 새 부츠를 신고 있는 내 발을 얼마나 부럽게 응시하고 있었는지를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낌 없이 나눠주기를 희망한다던 나는 이처럼 여전히 내 것에 집착해서 절호의 찬스를 종종 놓치고 만다. 이만큼 살았으면 제발 이제는 좀 불필요한 욕심을 내려 놓아야 하건만… 더 잘 훈련 된 기쁨과 행복으로 만나는 이들에게 영영 한 감격을 선물하고픈 것, 그것이 곧 새로운 해를 맞이할 나의 바램이다.
2017-11-01 달빛 소나타
유난히 잠 못 드는 밤이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쓸쓸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한 이런 날에 전 같으면 깔끔하게 소주 한 잔으로 고독을 마셔버렸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일도 없다. 알코올이 나를 거부하기도 하고 생각을 마비시키는 거짓음료가 완전 싫어졌기 때문이다. 보름날이 가까운 밤 하늘은 금빛과 회색의 중간이다. 그 빛이 창문 밖의 아름드리 나무에 스며 들어 해리포터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상야릇한 장엄한 분위기 속으로 나를 이끈다. 뭔지 모를 그 느낌은 점점 소나타의 악장으로 연결되어 내 마음을 몰입시키려 한다. 그러나 잠시 잊고 있었던 직장에서의 일이 갑자기 떠 오른다. 환상이 깨지고 말았다. 오늘 스테파니와 다퉜던 일로 마음이 영 찜찜하다. 의견 충돌의 원인제공은 그녀가 먼저 시작 했지만 단어 선택을 잘못해 소견머리 없음을 보인 것은 참을성 없는 나의 부족한 처사였음이 후회된다. 이제는 웬만큼 이방인의 삶에 익숙해질 때도 됐건만 여전히 이곳 이민의 땅에서 다른 민족과 겨루어 살아 가는 일이 왜 그리 고달픈지. 그러나 애써 마음을 추스르고 내일의 출근을 위해 잠을 청하기로 했다. 그런데 창문의 커튼을 닫으려는 순간 달빛 사이로 옆집에 사는 '챙'의 자동차 문이 열리고 있음이 눈에 들어왔다. 컴퓨터 부품 사업을 하는 그가 출장을 다녀온 듯하나 자동차에서 물품을 꺼내고 있는 모습은 왜소한 그와 많이 다르다. 스포츠 머리에 울퉁불퉁 건장한 몸집을 가진 사람들이 여러 개의 박스를 바닥에 내려 놓는 것으로 보아 밤 손님이 침범한 것으로 판단 된다. 두 다리가 후들거리고 심장이 벌렁벌렁 뛴다. 착하고 부지런한 챙의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만 하는데 내 몸은 그만 얼어버렸다. 그 순간 작업을 끝낸 듯 한 사람이 우리 집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때에야 절대 절명의 위급한 사태임을 파악한 나의 몸은 이미 중국배우 성룡처럼 순식간에 허공을 날라서 현관문을 열어 젖히고 있었다. "야, 이 도둑 놈아. 꼼짝 마" 전혀 예기치 않은 출현에 놀란 녀석은 내 자동차 문을 열려다가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 앉아 버렸다. 이때였다. 순발력 빠른 나는 날렵한 동작으로 잔디용 수도를 틀어 세찬 물줄기를 녀석에게 거세게 쏟아 부었다. 졸지에 물 벼락을 맞은 그가 어기적거리며 일어나더니 뒤뚱대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도 놓칠세라 그의 뒤를 발 빠르게 쫓아가며 힘을 다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거기 서. 당장 서란 말 야, 이 나쁜 놈아." 고요한 밤에 적막을 깨는 천둥 같은 소리에 그는 정말 죽을 힘을 다해 달아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나는 단 한 명만을 쫓고 있었는데 도망치고 있는 녀석은 도합 네 명이었다. 아! 그때서야 제 정신으로 돌아온 나는 등골이 오싹했다. 곧 방향을 바꾸어 집을 향해 뛰었지만 야속하게도 발바닥은 제자리 걸음이다. 이후 어떻게 집까지 돌아왔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야 내 모습을 살펴보니 가관이 아니다. 맨발은 찢겨져 피가 흐르고 있었고 풀어 헤쳐진 잠옷에선 땀이 물이 되어 뚝뚝 떨어질 정도였다. 산발한 긴 파마머리는 온통 얼굴을 뒤덮었고 손에는 다 닳아빠진 빗자루까지 들려 있었으니 그들이 혼비백산 줄행랑을 칠만도 했다. 한국 말을 전혀 알리 없는 그들이 무덤에서 살아나온 것 같은 동양귀신에게 잡혀 먹히지 않기 위해선 목숨을 걸고 뛰었을 게다. 잠시 후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차는 무려 다섯 대나 되었다. 리포터를 작성하던 경찰이 진지한 어조로 나에게 묻는다. "혹시 우리와 손잡고 일해 보진 않겠소?" 잠시 후 소나타의 연주가 다시 흐르기 시작했고 달빛은 더욱 총총해졌다.
2017-11-01 돌멩이
까맣고 단단하고 멋진 걸 찾고있다. 겉은 반질반질하며 작은 구멍도 없어야 하며 모양은 타원형이면서 이뻐야 한다. 물론 흠도 없어야 하며 손바닥만 한 크기가 딱 좋다. 세상 어디에나 돌들은 무수히 많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찾으려 하는 모양을 정하고 보니 내마음에 쏙 드는 것을 찾는 게 쉽지가 않다. 원하는 돌의 모양을, 아는 이가 내 생각하며 찾았다고 손에 쥐여주면, 정겨운 마음으로 깨끗이 씻어 물기가 마르도록 기다리면서, 처음 돌단장을 끝낸다. 난 이제 그 위에 노란, 호랑나비들을 또 패랭이꽃과 들꽃들을 그린다. 그냥 길가에 있든 돌멩이가 나비가 되어 날으고 또 아름다운 꽃을 피워 향기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몇 개씩 그려놓은 작은 돌들은 내가 좋아하는, 사랑하는, 감사하는 이들에게로 떠나간다. 처음엔 욕심내어 혼자 쌓아놓고 즐겼지만, 문득 난 이 돌멩이들을 날려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걸 다른 이에게 주는 이별의 아픔보다 그 대가로 가지는 더 큰 기쁨을 배웠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좋아해 주고 늘 곁에 두면서 나를 기억해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며 감사한다. 내게 있어, 예술은 누군가를 기쁘게 또 행복하게 하는 거라는 소박한 믿음이 늘 함께 있다. 비록 하잖아 보이는 길가의 돌멩이였지만, 그 위에다 내 마음을 얹고 사랑을 칠하고 또 정성도 보탠 그순간, 화려하고 아름다운 작은 작품으로 변하면서, 기꺼이 내 품을 떠나 세상 밖으로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마음속에 사랑하는 이를 그리면서 그릴 때에는, 내 가슴도 두근거리고 설렌다. 난, 받는 이의 좋아하며 웃는 모습을 미리 담고 상상하면서, 더없이 행복하다. 길가에 뒹굴고 있든 것일지라도, 어느덧 아름답게 사랑스럽게 변하는 게 고맙다. 겨울비가 끝나고 나면 깨끗한 돌들을 찾기가 쉬워진다. 다시 길을 세심하게 눈여겨보며 돌멩이를 찾으려 머리를 숙이면서, 나 스스로도 머리를 더 숙여 겸손해지고픈 마음마저 든다.
2017-10-04 설레임
공항,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데려다줄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설레인다. 아직 한참 이른 새벽이지만, 많은 사람과 그들의 짐가방과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이름의 도착지와 얼른 떠나고 싶어 서두르는 마음들이, 공중으로 바닥으로 엉켜져서는 들뜬다. 나도 그 속에서 같이 날아다닌다, 실타래 같은 생각들과 함께. 왜 익숙하고 친근한 것은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 것일까? 영원히 곁에 있으리라는 만만한 믿음 때문이지만, 아무런 탈 없이 평화롭고 익숙한 일상들이 결코 감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다르게도 해보고 싶고, 왠지 저 먼 곳 무지개 너머에 숨겨져 있는 보석 상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들이, 어서어서 떠나보라고 충동질한다. 전혀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가지는, 이상스러운 반항과 이유 없는 자신감과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설레임이, 잊히지 않는 중독된 맛처럼 계속해서 잡아당기는 것이다. 어디를 가도, 장소와 사람들의 제대로 된 이름도 외우지 못하고서 돌아오지만, 지나가듯 누군가가 했든 한마디와, 웃으면서 스쳤든 감촉과, 낯선 곳의 바람이 내는 긴소리와, 차 안에서 흥얼거렸든 유행가 가사는 아직도 떠오른다. 그런 작은 것들의 두런거리는 속삭임과, 함께 지냈던 사람들의 내음과, 떠나오는 날에 떠오르든 유난히 붉었든 태양이, 더 오래오래 설레게 한다. 그리고는 다시 낯선 곳에서 살던 곳으로 돌아오기 위해, 불편한 공항 의자에 앉은 채 졸면서 시계를 보고 있을 것이다. 여전히 되풀이되는 - 그래, 그랬어- 라는 후회와 미안한 마음으로, 비어있던 몫을 메꾸려 더 애쓸 거라는 거 안다. 그렇지만 편안하고 익숙하고 더없이 게으른 날의 일상 속에서 살다, 문득 가슴속 한 곳이 다시 답답해질 땐, 어떻게 무슨 변명을 하며 이 설레임을 찾아 떠나야 할까,,
2017-10-04 바이러스와 백신
미국에 도착 직후 이민 보따리를 채 풀기도 전에 먼저 오신 오빠는 내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여긴 눈 뜨고 코 베어가는 곳이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 하느니라" 이해할 수 없는 오라버니의 조언에 나는 피식 웃으며 속으로 대답했다. '내가 오빠 닮은 줄 아시나 봐. 걱정 마세요.' 그러나 내심 고단했을 오빠의 이민생활이 느껴져 맘이 짠했다. 세월이 꽤 흘렀다. 당시 중학생이던 두 아이가 대학원을 졸업해 자기 앞가림을 하기에 이르렀다. 나의 책임을 다했다 해도 어쩐 일인지 미국생활은 눈뜨고 일어나면 밤 늦게까지 그저 일에 파묻혀 사는 일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미련할 만큼 일에 열중하며 산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 하루를 선물로 받아 건강하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나름 행복하기만 하다. 그런데 어느 날 뜻하지 않은 고민이 생겼다. 평소 선한 일에 언제나 솔선수범이던 한 지인이 내게 매우 곤란한 부탁을 했다. 정확히 닷새만 필요하니 꼭 현금만을 빌려달라고 간곡히 사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비축해 놓은 비자금이 별로 없다. 기껏해야 응급상황 발생시 한 달 정도 살수 있는 비용뿐이다. 내 형편을 소상히 밝혀 거절을 표하자 그 지인은 아주 급한 일이니 다른 곳에서라도 융통하여 빌려 달라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끈질기게 채근을 했다. 참으로 괴로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하늘나라는 항상 급한 사람을 먼저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에 그의 위급함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어서였다. 이 지역의 유명인이라 자처하는 그는 체면상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이 창피했는지 오죽하면 가난한 싱글맘에게 손을 내밀었겠느냐며 사정 또 사정을 했다. 그리하여 나는 결국 최선을 다하여 쌈짓돈은 물론 그가 원하는 만큼의 현금을 융통하여 빌려 드렸다. 그런데 이후 그 지인은 곧바로 일방적으로 내게 연락을 끊어버렸다.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바뀐 지금까지도 빌려간 돈은 한 푼도 돌려 주질 않고 있다. 다만 얼마씩이라도 갚아 달라고 통사정을 해 보았지만 오리무중이다. 아니 오히려 그까짓 거 몇 푼 안되는 것 가지고 사람을 들들 볶는다고 역정을 내었다. 돈을 빌려가기 전에 그는 틈만 나면 자신이 부자이며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사람이라고 누구에게나 자랑하고 다녔다. 남들이 부러워 할 만한 아방궁 같은 멋진 주택을 소유하고 있고 매달 정기적으로 월세를 받고 있는 본인 소유의 건물도 있으며 매상 좋은 비즈니스도 갖고 있음은 그를 아는 이웃들도 인정하고 있다. 게다가 넘치는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고 있다는 평판 좋은 그는 때때로 곤고한 영혼들에게 명강의까지 하고 다니신다. 나는 많은 날들을 원통함과 절통함, 자괴감으로 지냈다. 당시 지극히 상식적인 차용증 한 장 받아 두지 않았던 나 자신에 대한 미움으로 밤을 지새우던 어느 날 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게 되었다. 메일을 열자 웬일인지 스팸 메일이 여러 개나 들어 와 있음에 짜증이 났다. 가차없이 쓰레기통에 넣어 삭제했는데 또 다른 불필요한 것들이 화면에 뜬다. 신경질적으로 마우스를 이리저리 클릭하다가 바이러스가 침입했다는 경고가 울린다. 꾹 참고 알약으로 말끔히 청소하고 다시는 재생할 수 없도록 잠금 장치를 설정한 뒤 안전장치를 걸어 두었다. 그렇게 한참을 컴퓨터와 씨름하던 중 한 가지 생각이 강렬하게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지금까지 전혀 관리하지 않고 있었던 나의 내면의 세계였다. 살아오는 동안 삭제하지 않은 채 오직 쌓아 두기만 했던 더러운 찌꺼기들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음이 줄줄이 떠올랐다. 그 지인은 지혜롭지 못해서 눈에 뻔히 드러나는 돈으로 나에게 사기를 쳤는지 모르지만 나야말로 용의주도하게 티 나지 않는 속임수를 삶에 적용해 전혀 들키지 않고 잘 살고 있음이 깨달아져 한없이 울었다. 늘 존경하고 있는 어떤 분의 말씀이 떠오른다. 똑같은 이슬이지만 그것을 뱀이 먹으면 독이 되고 벌이 먹으면 꿀을 만들어 낸다고 했다. 아, 얼마나 다행인가. 아직 내 몸의 구석으로까지 퍼지지 않은 독을 제거하기 위해 나는 재빨리 미움과 원망, 분노의 바이러스들을 제거하는 일들로 바빠진다. 그리고 마침내 최고의 해독제인 '용서'라는 백신으로 모든 것을 아름답게 정리했다. 이 모든 일에 고맙고 감사하다. 비록 비싼 인생수업료를 치르긴 했지만 내 안에 바이러스의 침범을 막는 잠금 장치를 굳건히 걸어 둔 것과 어떤 상황에 상관없이 마음의 방향이 여전히 하늘을 향해 열려 있음에 기쁘기까지 하다. 이제서야 비로소 행복한 꿀벌이 된 나는 우리 오라버님의 당부대로 눈을 크게 뜨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 부지런히 나를 살핀다. 혹시 내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누군가에게 눈물로 호소할 일을 행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고 말이다.
2017-09-06 파워 게임
근간에 소중한 친구와 작별을 고했다. 그녀로부터 아프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지 채 석 달도 채우지 못해서다. 나보다 열 살이나 아래인 그녀가 먼저 지구를 떠난 뒤에 닥치는 대로 영화를 보러 다녔다. 여전히 이곳을 향해 웃고 있는 카톡 속의 행복한 얼굴이 함께 했던 추억들을 상기시키는 것이 무척 힘들다. 그녀가 남기고 간 많은 분량의 여행칼럼은 대부분 나와 동반했던 여행지였기에 더욱 그런가 보다. 호프 밸리에서의 은사시나무와 송어낚시, 요세미티 하프돔에서의 저녁노을, 나파의 한적한 시골 마을의 포도원과 하프문베이 바다의 장엄한 파도, 그리고 따스한 봄볕 아래서 손잡고 거닐었던 보랏빛 들꽃길이 마냥 그립다. 그녀와의 갑작스런 이별 후 나는 계속 의아했다. 하필이면 왜 내게 이런 일이 허락됐느냐고 울부짖으며 분노할 만도 한데 그녀는 단 한마디의 원망도 없이 젊은 나이에 이 땅을 훌훌 털고 떠났다. 과연 긍정적인 그 원천의 힘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궁금했다. 그래서 이런저런 허함과 우울한 마음으로 무작정 영화를 보러 다닌 것이 열 편이 넘었다. 그중에 한국 영화는 네 편을 감상했고 어제는 늦은 시간에 '택시운전사'를 관람하게 되었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를 실화한 영화라는 점에서 초반부터 매우 긴장되었다. 영화가 시작되자 스크린에 과격하게 퍼부어지고 있는 군부대들의 민간인 사격장면에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그 어떤 명령 수행이 떨어지더라도 어찌 한 가족 한 형제에게 그런 만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 너무 끔찍하여 울분을 금할 수 없었다. 사건 당시 나는 서울에 살고 있었기에 이 비극적인 사실을 잘 알지 못했다. 미디어를 장악한 정부의 소행으로 올바른 뉴스를 접할 수 없었던 것이 원인이었다 해도 역사의 진보를 위해 희생하신 임들께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에 내내 명복을 빌었다. 극장 안 곳곳에서도 관람객들의 분노와 통탄의 흐느낌이 들려왔다. 갑자기 상영 도중 2004년에 개봉한 영화 '실미도'가 떠올랐다. 1970년대 북한 침투 작전 특수 훈련 중 정부와 군, 경찰 간의 교전으로 비운에 갔던 31명의 영혼들에게도 같은 마음으로 평안을 빌었다. 사건 이후 국방부의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해 늦게나마 조사가 시작됐던 것으로 기억되는 '실미도'가 지금의 '택시 운전사'와 오버랩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생각하다가 문득 힘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내가 믿기로 인생은 사는 날 동안 연속적인 파워게임의 반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파워게임의 승패는 마음가짐의 싸움으로부터 시작되고 정의와 불의, 선함과 악함의 대결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하늘과 땅으로 나뉘는 것처럼 중대한 일인 것이다. 나는영화 '택시 운전사' 를 통해 처음에는 작은 힘으로 시작된 공의가 다이너마이트 같은 폭발적인 파워가 되어 결국 죄와 악과 불의를 몰아내고 있음을 눈을 크게 뜨고 지켜보았다. 겉으로는 불법의 사악한 권력이 세상을 삼킬 듯 거대한 힘으로 보이지만 언젠가는 내공의 힘을 가진 의로움이 반드시 승리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영화에서처럼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감춘다고 감춰진 일이 어디 있었던가! 어차피 살아가는 일 자체가 파워 게임이라면 나는 오직 선한 싸움을 위해 내공을 다지리라 마음먹는다. 하늘로 떠난 내 친구는 심령으로 자기를 이기고 환경을 이기고 세상을 이겨낸 영력을 가진 실력자였다. 평소 그녀가 즐겨 부르던 노랫말은 내면에 잠재해 있던 거대한 파워였음을 나는 지금에서야 알았다.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근심 하나 없네. 사랑의 주, 내 갈길을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2017-09-06 약속
캔버스 앞에 앉았다. 아무 것도 없는 텅빈 캔버스 앞에서 무엇으로 그릴까 하는 생각에 잠시 머뭇거린다. 화려한 색감으로, 저 밑바닥 아래 감춰있는 속마음을 드러내고 표현하고 즐기는 난, 가끔은 유화로 또 아크릴화로 많은 색들을 꺼집어낸다. 기름으로 묽게하여 두껍고 깊은 질감이지만 잘마르지 않아 오랜 시간의 덧칠이 필요한 유화와, 물로 섞어서 간편하게 금방 마르면서 이미 만들어져 있는 많은색을 원하는대로 빨리 편하게 쓸수있는 아크릴화이다. 그렇지만 요즈음은 무엇이든 그자리에서 바로 알아야하고, 또 빨리 보고싶어 하는 마음으로 모든 일에 서두른다. 느긋하게 그 과정 안에서 가지는 즐거움과 깊은 맛을 잊어버린 것이다. "인간시장"의 작가 김홍신이 최인호 작가와의 생전의 약속으로 온 손가락 마디마디의 고통을 감수하며 여전히 펜으로 소설을 집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소설의 긴 집필 과정을 컴퓨터로 쓰면 편하고 쉬울 것인데도 굳이 약속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성공했고 많은 연륜을 쌓은 작가이면, 누가 그 고집을 일부러 묻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스스로 지켜야할 것은 힘들어도 품고, 또 포기할 것은 버리고서 가야한다는 신념때문에 여전히 펜을 고집하고 있다는 것이 커다란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지켜가는 사람이 많으니 세상은 또 아름다운 것일 거다. 모든 일들이, 쉽게 온 것은 쉽게 간다는 거 잘 안다. 오래전 어렵게 그림을 다시 시작하며 했던 처음 나와의 약속 그대로 "지킬 것은 지켜가며, 그림도 그리고 또 세상도 살아야지요" 라고 중얼거리면서, 뒷켠에 묵혀 두었던 유화물감을 한가득 꺼내어 오래된 커다란 파렛트위에 아주 듬직하니 마음껏 짜놓았다.
2017-08-02 새 둥지를 보며
아침 일찍 새소리에 잠이 깨었다. 오랜만에 눈부신 동쪽 햇살 보며 두 눈 찡그린 체 뒷마당으로 나선다. 늦은 밤에 잠드는 버릇 때문에 밝아오는 여명을 보지 못하지만, 가끔 시끄러운 새들의 지저귐 덕분에 억지 새벽잠에서 깬다. 부스스한 체 엉망으로 엉킨 머리가 창에 가득하다. 진한 커피 한잔을 들고 문을 열다 언뜻 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선 웃음이 터진다. 나의 무심한 큰 웃음소리에 놀란 새들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급히 날아오르고, 그 소리에 놀란 나는 뜨거운 커피를 쏟을 뻔했다. 이사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 마당 뒤편 지붕 등에 불이 들어오지 않기에 사다리를 걸고서 올라가 보니, 새가 알을 품고 있었다. 한동안 불을 켜지도 않았었고 또 높은 곳에 있는 탓에 그리 편하게 알을 품고 있었던 거 같다. 어릴 적부터 새들이 무서웠던 나는, 언제 새가 날아가고 난 후에 등을 갈아야지 하면서 몇 년이 지났고, 새들은 둥지 주인을 바꾸어 가며 여전히 알을 품고 새끼 새들을 키워가고, 난 아직도 그 등의 전구를 바꾸지 못하고 있다. 무슨 종류의 새들인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태어난 여기가 고향이라 여기는지 조금씩 숫자를 늘려가면서, 어느 날은 수없이 많은 새가 작은 지붕 위에도 담장 꼭대기에도 내가 가끔 노을을 보는 의자 위에도 앉아, 나를 바라다보고 있다. 난 새들이 나의 자리를 침범하였다 생각하며 투덜거렸는데, 갑자기 어쩌면 나도 잠깐 이 세상의 한 자리를 빌려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라 오만 부리지만, 사실은 뒷마당의 많은 새처럼 그냥 스스로가 그렇게 여기며 사는 것이지 진정 나의 것이 아닌 것이다. 산다는 것도, 바람 불면 잠시 숨어있다 다시 날씨 좋은 날 더없이 지금을 만끽하며 뒷마당에 살고있는 새들처럼, 작은 하나의 생명체 그것뿐일 거다.
2017-08-02 별이 빛나는 밤에
꽤 오랫동안 발병을 앓았다. 우리의 민요 중에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난다'고 노래하던데 어찌 된 일로 임도 없는 나에게 발병이 생겨났는지 조금은 억울한 생각이 든다. 의학 용어로는 'Heel spur'라고 하는데 멀쩡하던 발뒤꿈치에 갑자기 불필요한 뼈가 만들어져 발바닥의 인대와 신경을 누르는 현상으로 가해지는 통증은 그야말로 몸서리치게 아팠다. 평소 틈만 나면 발발거리며 잘 돌아다니던 내가 풀이 죽어 방 안에만 박혀 있는 것을 안쓰러워하던 경희 언니가 느닷없이 명령조의 전화를 했다. "오늘 정각 12시에 너희 집 앞에 도착할 테니 수영복 한 벌하고 노트북만 챙겨 들고 나와" 영문도 모른 채 절룩거리며 대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낯 설은 벤이 내 앞에 섰다. 뜻밖에도 자동차 안에는 경희 언니와 함께 초면인 세 명의 여인들이 함께 탑승하고 있었고 큰 아이스박스와 더불어 침낭. 먹거리 가방 등이 가득 실려 있었다. 한눈에 봐도 먼 거리 여행임을 직감했다. 어리둥절해 하는 나를 향해 언니가 말한다. " 발바닥에 두 번씩이나 주사를 맞았는데도 낫지 않았다니 무척 걱정된다. 다른 치료법으로 한 번 고쳐보자. 내가 알아봤는데 그곳이 참 좋다더라. 네가 안 간다고 할까 봐서 여기 네 또래 친구들까지 알선해서 모셔왔다." 매사에 마음 씀씀이가 깊은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처럼 챙겨주니 눈물이 핑 돌았다. " 반갑습니다. 난 미세스 박이고요. 저는 김 수자예요. 재키 엄마입니다" 서로의 인사가 끝난 후 멀미를 배려해 거듭 미안해하는 나를 운전석 옆에 앉혀주었다. 서먹서먹한 것도 잠시 우린 금방 친해져서 가는 동안 내내 수다가 끊이질 않았다. 드디어 남쪽으로 5시간을 운전해 도착한 지점은 깨끗한 시골 마을에 자리한 작은 Lake. I유황 온천장이었다. 놀라웠다. 땅에서 올라오는 유황의 냄새를 즐기며 많은 양들이 들판을 유유히 거닐고 있는 풍경은 특이하고 경이로웠다. 첫날 저녁은 야외에서 불을 지펴 고기를 굽고 된장찌개와 상추, 풋고추로 시골밥상을 차렸다. 둘이 먹다 한 사람이 죽어도 모를 만큼 정말 짱 맛있었다. 예로부터 정이 많은 우리 민족은 역시 이곳에서도 들어나 타지에서 온 처음 만난 사람과도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밤 늦도록 담소를 하니 천국이 따로 없는 듯했다. 더구나 미국땅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온천장에 우리나라 사람끼리 한데 어울려 회포를 풀 수 있으니 얼마나 가슴 뿌듯하고 즐거운지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얼떨결에 달려 나오는 바람에 나는 비키니 수영복의 상의만 달랑 싸가지고 왔던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상심하는 나를 위로하느라 우리 여인네들은 이참에 모두 이브가 되자고 의견을 모았다. 드디어 다른 방문객들이 깊이 잠이 들기를 기다려 살금살금 온천물로 뛰어들었다. 가로등도 없는 곳에 작은 전등마저 모두 꺼버리니 사방은 정말 깜깜했다. 그러자 오직 머리 위로 쏟아지는 수많은 별빛만이 더욱 찬란해져 저절로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그 아름다운 빛들이 부끄러운 몸을 감싸고 있는 물속까지 침범해 들어왔지만 우린 거침없이 온천의 매끄러움을 맨살에 느끼며 마음껏 황홀해 했다. 세월에 상관없이 여전히 탱탱하고 아름다운 선녀들의 모습에 반한 양들은 잠이 깨어 "음 메 에에" 침을 꼴 까닥 삼키었고 살랑 이던 바람마저 부러운듯 주위는 고요하기만 했다. 어느 곳에선가 날개옷을 감춘 나무꾼이 숨어 있을 만한데 새벽이 맞도록 잠꾸러기 나무꾼은 고맙게도 나타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기로 한 마지막 날 밤 온천을 즐기러 온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장작불을 피워 캠프파이어를 열었다. 서로간에 이름도 성도 직업도 모른다. 아니 알 필요도 없다. 다만 하늘에선 수많은 별빛이 땅에선 타오르는 모닥불이 서로 만나 둥그렇게 둘러앉은 이들의 얼굴을 환하게 비춰주고 있다. 짧은 만남, 깊은 추억을 못내 아쉬워하는 우리들은 눈빛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마음들이 모여서 우리 서로 사랑해'라고 말이다. 집으로 돌아온 이후 여행지에서 썼던 글을 출품했는데 올해의 신인상으로 당선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중국 변방의 어느 노인이 말했다는 고사성어 '새옹지마'가 떠오른다. 인간 만사 화가 복이 되고 복이 화가 될 수도 있기에 무슨 일이든 그저 묵묵히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터득한다. 발병으로 얻은 나의 복처럼 사랑하는 독자들도 새옹지마의 복을 많이 받아 누렸으면 좋겠다.
2017-07-06 짝사랑의 실루엣
이사랑은 혼자서 하는, 마음으로 오롯이 쌓아가는 것이다. 그 사랑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다만 존재한다는 것에 감사드리면 되는 것이리라. 중학생 때 화실의 꼬마 선생님을 아주 오래 아무도 몰래 혼자 좋아했었다. 그 선생님이 머리 깎고 군대 가는 어느 가을날엔, 학교를 조퇴하며 혼자 어느 먼 초등학교 운동장 한구석에 서 있었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어른이 된 걸 보여주고 자랑하고파 선생님을 찾아갔었던 적도 있었다. 어떻게 그리도 용감했었는지 새삼 나도 놀란다. 무얼 원해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하고있는 것에 충실해지고 싶었고,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것으로 감사하며 내게 주어진 사랑의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었다. 어쩌면 소유의 유혹도 마음속 유치함도 하나도 필요하지 않은, 그런 투명함으로 부끄럽지 않았었나 보다. 갑자기 왜 이 혼자 하든 마음속 사랑이 떠올랐을까? 먼 바람결에 전해온 이야기 속에, 그 선생님이 이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다는 소식 때문이리라,,,
2017-06-04 낯선 곳으로의 꿈
아주 먼 곳의 작은 바닷가 마을. 조금은 넘치게 마신 와인과 기분 좋게 살랑거리는 바람과 초록빛 바다 색깔에 취한 체로, 아무도 알아보는 이 없는 나라의 골목길에서 나풀거리며 어두운 밤의 불빛 속을 걷고 싶다. 언제 한번 풀어놓고 자유롭게 나 자신을 꺼내어본 적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항상 두 손 움켜쥐고 혹시 잘못할까 걱정하며 살아왔는데 가끔은 훨훨 다 놓고서 편안해지고도 싶다. 언제나 오랫동안 가고 싶었고 꿈꾸던 곳. 조금은 낯설겠지만, 굳이 정들려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있는 곳. 그래서 난 여전히 세상을 떠돌며 헤매는 상상을 하며 꿈을 꾼다. 떠나와 있다는 바람끼의 유연함까지 있기에. 마음껏 예술이라는 더 없는 감사를 빌려 나는 다시 날아가고 싶은 꿈을 이어가고 있다. 먼 낯선 곳을 그리며.